[노사정이 주목한 올해 노동이슈는] 초고령사회 진입, 정년연장 논의 시급
정년연장 논의가 시급해졌다. 법정 정년을 만 60세로 상향한 지 10년도 되지 않아 현안이 됐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지난달 23일 기준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해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저출생으로 노인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가파르게 증가한 것으로, 노사정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정년연장 논의가 시급하다고 한 목소리로 강조했다.
해법 다른 노동계와 재계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16~24일 노사정 관계자와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올해 주목할 노동현안(복수응답)을 주관식으로 물었더니 응답자 과반이 넘는 55명이 정년연장을 꼽았다. 100명이 제기한 237개 답변 중 공통된 의제를 묶어보니 29개였다.
정년연장에서 가장 큰 쟁점은 방식이다. 지난해 10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인구구조 변화 대응계속고용위원회 8차 회의를 보면 노동계와 재계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노동계는 국민연금 수급연령과 정년의 불일치 문제를 강조한다. 연금수급 연령은 2024년 63세, 2028년부터 64세, 2033년부터 65세로 60세인 정년과 어긋나 3~5년의 소득공백 문제가 발생한다. 노후 소득을 보전해 노인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년을 만 65세로 법제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법제화로 중소기업 노동자가 조기퇴직 압력에서 벗어나야 노동시장 불평등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재계는 현행 임금체계에서 정년을 연장하면 불평등이 확대한다고 전망한다. 정년연장 효과가 대기업에서만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는 연공급제를 유지할 수 있는 대기업은 연공성을 강화해 기업규모별 임금격차가 확대된다는 우려다. 정년연장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해 일자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점도 덧붙인다. 그래서 재계는 근속연수가 소멸하는 퇴직 후 재고용 혹은 임금체계 개편을 전제한 계속고용 방식을 선호한다.
윤석열 ‘노동약자지원법’ 비판 쇄도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은 지난해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올해는 45표를 얻어 2위에 올랐다. 특히 탄핵 이후 대선을 치러 정권이 교체될 경우 노란봉투법이 통과될 것으로 전망한 응답자가 많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21대·22대 국회에서 발의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에 모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노조법 개정안은 사용자 범위를 근로계약관계를 맺은 사용자뿐 아니라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이까지 확대한다. 하청·간접고용뿐 아니라 특수고용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취지다. 올해에도 사법부가 택배·대리운전 노동자의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인정하면서 실질적 지배력을 지닌 원청이 특수고용노동자의 사용자라는 판결이 이어졌다. 행정부의 거듭된 거부권 행사가 비판받는 이유다.
3위를 차지한 현안은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 및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 보호 법안이다. 25표를 얻었다. 노동관계법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지원하는 제도가 초점이다.
노동계와 정치권 일각에서 추진했던 일하는 사람 기본법도 한 형태다. 고용형태와 무관하게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노동관계법상 근로자 보호조치를 제공하는 게 뼈대다. 그러나 제안하는 쪽마다 세부 내용은 다르다. 근로계약서 체결과 교부의 의무, 사용자의 일방적 근로계약 해지와 변경을 금지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은 오랫동안 제기된 답이다. 근로기준법의 적용 밖에 있는 영세사업장 노동자를 중심에 놓는다.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근로기준법을 모든 사업장 노동자에게 적용하자는 제안으로, 최근에는 플랫폼노동자 등을 노동자로 보고, 만약 노동자성을 인정할 수 없다면 사용자가 이를 반증하도록 하는 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성격도 가미된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런 사각지대 노동자를 지원하고 보호하겠다며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법률’(노동약자지원법)을 추진하기도 했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지난해 11월 노동약자지원법 초안을 공개했다.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와 프리랜서 같은 미조직 노동자를 노동약자로 규정하고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기존 지원 정책을 재탕했다”는 지적과 함께 “실효성이 없다”는 노동계 비판을 한 몸에 받았다. 받았다. 노란봉투법이나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같은 포괄적 노동법 보호체계로의 편입이라는 빠른 길을 두고 노동자를 약자와 강자로 나눠 이분법적 프레임만 강화한다는 지적이다.
위험의 이주화 드러낸 아리셀 참사
매년 순위권에서 빠지지 않는 노동시간과 최저임금도 나란히 4·5위에 이름을 올렸다. 각각 19표, 11표를 받았다. 특히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주 4.5일제 등 노동시간 단축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던 만큼 조기대선에서 노동시간 의제가 부각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6월부터 시작한 경사노위 일·생활 균형 위원회 논의도 진행 중이다. 노동계의 노동시간 단축 요구에 맞서 재계와 정부는 노동시간 유연화 같은 연장근로 개편안을 주장하고 있다.
최저임금에 대한 노사정 관심도 크다. 지난해 업종별 차등지급 주장에 맞서 노동계는 플랫폼·특수고용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확대 적용하자고 요구해왔다. 화물노동자에게 최저임금 같은 역할을 했던 안전운임제가 2020년부터 2022년 말까지 시행됐던 것처럼 배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나 안전운임을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일부 응답자는 노사의 최저임금 합의가 불투명하다는 우려 섞인 전망도 제시했다. 2025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1.7%로 제도 시행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치를 기록함에 따라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 논의가 격화할 것으로 보이는데 경기침체로 노사 모두 양보가 어렵다는 이유다.
이주노동자 고용과 산재 문제도 10표로 주목할 현안 6위로 선정됐다. 2024년은 고용허가제 도입 20주년이기도 했지만 이주 가사노동자 시범사업과 아리셀 참사로 외국인고용정책에서 중요한 연도로 남았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는 지난해 7월 필리핀 국적의 이주 가사노동자 100명을 국내로 들여왔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들에게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노동계는 거세게 반대했지만 정부와 서울시는 사업을 강행했다. 이후 노동자에 대한 임금체불과 감시·과로로 인권침해 문제가 야기되고 이용자의 중도취소와 노동자 이탈이 이어지면서 정부는 이탈한 노동자 2명을 강제출국 조치하기도 했다. 예견된 정책 실패였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에 따라 선주민에 비해 산재 사망률이 2.3~3.6배 높은 것으로 조사된 이주노동자 산업안전보건문제도 주목할 이슈로 꼽혔다. 지난 6월 발생한 아리셀 참사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역대 최악의 산재로 기록됐다. 지난달 29일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 성격이 아직 규정되지 않은 상태라서다. 아리셀 참사는 23명의 사망자 중 18명이 이주노동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위험의 이주화’ 문제도 드러냈다.
정소희 기자 sohee@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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