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
퇴직금 청구에 대한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2024다294705 (2025. 5. 29.)


* 사건 : 대법원 제3부 판결 2024다294705  퇴직금
* 원고, 피상고인 : 원고 1 외 9인
    원고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인의
    담당변호사 박경준 외 3인
* 피고, 상고인 : 주식회사 ○○○
    소송대리인 변호사 박병대 외 4인
* 원심판결 : 서울고등법원 2024. 8. 28. 선고 2022나2049800 판결
* 판결선고 : 2025. 5. 29.

[주 문]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사건의 개요

  원심이 인정한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피고는 장례업, 장례비품 도․소매 및 대여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이고, 원고들은 장례지도사들이다. 

  원고들은 피고와 의전대행 위탁계약을 체결하고 2015. 11. 20.경까지 피고 지역본부에서 ‘의전팀장’으로 불리면서 장례의전대행 업무를 수행하였다.

  피고가 장례의전 업무를 주식회사 △△△(이하 ‘소외 회사’라 한다)에 위탁하기로 함에 따라, 2015. 11. 21. 원고들은 피고와 의전대행 위탁계약을 해지하기로 합의하였다(이하 ‘이 사건 해지합의’라 한다). 원고들은 같은 날 소외 회사와 의전대행 위탁계약을 체결하고 계약이 종료될 때까지 의전팀장으로 장례의전대행 업무를 수행하였다.

2. 원고들이 피고 소속으로 근무하는 동안 피고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제1, 2상고이유)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로 원고들이 피고와 의전대행 위탁계약을 체결하고 장례의전대행 업무를 수행한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피고에게 근로를 제공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 판단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근로자성 판단에 관한 법리오해나 심리미진 등의 잘못이 없다.

3.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제3상고이유) 

  가. 관련 법리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 원칙과 권리남용금지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다32332 판결 등 참조).

  다만 실정법에 정하여진 개별 법제도의 구체적 내용에 좇아 판단되는 바를 신의칙과 같은 일반조항에 의한 법원칙을 들어 배제 또는 제한하는 것은 중요한 법가치의 하나인 법적 안정성을 후퇴시킬 우려가 있다. 특히 소멸시효 제도는 법률관계 주장에 일정한 시간적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그에 관한 당사자 사이의 다툼을 종식시키려는 것으로서, 누구에게나 무차별적ㆍ객관적으로 적용되는 시간의 경과가 1차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설계되었음을 고려하면, 법적 안정성 요구는 더욱 선명하게 제기된다. 따라서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평가하는 것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대법원 2005. 5. 13. 선고 2004다71881 판결, 대법원 2016. 9. 30. 선고 2016다218713, 218720 판결 등 참조).

  나. 원심 판단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로 원고들의 퇴직금 청구권에 대한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다. 대법원 판단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신의성실 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

    1) 원고들이 소외 회사로 소속이 변경된 이후에도 계약이 종료될 때까지 계속하여 종전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였거나, 피고가 이 사건 해지합의 당시 원고들에게 퇴직금 지급에 관한 고지나 안내를 하지 않았다는 등의 사정만으로 피고가 시효완성 전에 원고들의 퇴직금 청구권 행사를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원고들로 하여금 그러한 권리행사나 시효중단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이 사건 해지합의 당시 피고는 원고들뿐만 아니라 같은 지위의 다른 장례지도사들에게도 퇴직금 지급에 관한 고지나 안내, 퇴직금 정산 조치 등을 실시하지 않았다.

    2) 원고들과 같은 지위의 일부 장례지도사들은 이 사건 해지합의로부터 8개월 후인 2016. 7. 21. 피고를 상대로 근로자임을 전제로 한 퇴직금 청구의 소를 제기하여 2017. 4. 14. 제1심에서 전부 승소 판결을 선고받았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16가합2384). 이에 대해 피고가 항소(서울고등법원 2017나2022443) 및 상고(대법원 2018다278023)를 하였으나 모두 기각되어 그 판결이 확정되었다. 원고들로서는 일부 장례지도사들이 제1심 승소 판결을 선고받은 무렵에는 피고에 대한 퇴직금 청구권이 발생하였음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원고들은 이 사건 해지합의 후 3년 이내에 피고를 상대로 퇴직금 청구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었다 할 것이므로, 객관적으로 원고들의 퇴직금 청구권 행사에 어떠한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3) 피고가 시효완성 후에 원고들에게 시효 이익을 포기하거나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였다고 볼 만한 정황은 찾을 수 없다. 다른 채권자들과 달리 원고들에게 특별한 보호의 필요성이 있다거나 같은 처지의 다른 장례지도사들이 시효완성 후에 피고로부터 퇴직금을 지급받았다는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 피고가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퇴직금 지급을 거절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고 본 원심 판단에는 소멸시효 완성 주장의 신의칙 위반 여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4. 결론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이흥구 (재판장), 오석준, 노경필(주심), 이숙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