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존중’ ‘성장’ 외치는 이재명 대통령, 기대와 우려 사이
이재명 정부가 4일 공식 출범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 노동존중과 권리보장을 강조했고 한국노총과 정책협약을 맺는 등 노동계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중도보수 확장 기조 속에서 경제성장을 강조하며 ‘우클릭’ 우려도 낳았다. 노동의 기대와 우려 속에서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항해는 순항할 수 있을까.
성장 23번 나올 때 노동은 2번 그쳐
이날 공식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의 생각을 알려면 국회 로텐더홀에서 개최한 취임선서에 이은 취임연설인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 짐작할 수 있다. 키워드로 살펴보면 ‘노동’은 두 번 언급에 그친 반면 ‘성장’은 23번, ‘경제’는 12번, ‘기업’은 6번 거론됐다.
이 대통령은 연설에서 ‘노동’에 관해서는 “성장의 기회와 과실을 고루 나누는 것이 지속성장의 길”이라며 “성장과 분배는 모순관계가 아닌 보완관계인 것처럼, 기업 발전과 노동존중은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국민의 생명과 안전,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위협하고 부당하게 약자를 억압하며, 주가조작 같은 불공정거래로 시장 질서를 위협하는 등 규칙을 어겨 이익을 얻고 규칙을 지켜 피해를 입는 것은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 두 발언은 기업과 노동의 관계 속에서 짝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이재명 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이라며 “통제하고 관리하는 정부가 아니라 지원하고 격려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운을 띄웠다. 기업 활동 보장을 위해 규제를 네거티브 규제로 완화하는 등 기업이 경쟁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지만, 노동자 권리 위협 등 시장질서와 규칙을 어겨 이익을 얻고 다른 쪽이 피해를 보는 행위는 허용하지 않겠다고 강조한 것이다.
“기업 발전과 노동존중이 양립할 수 있다”는 발언 전에는 “특정한 지역, 기업, 계층에 몰아 투자하는 불균형 발전전략으로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압축 성장했지만 불균형 성장전략이 한계를 드러내고, 불평등에 따른 양극화가 성장을 가로막게 됐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면서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성장발전전략을 대전환해야 한다”며 “균형발전, 공정성장 전략, 공정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기업과 노동, 성장과 분배 사이에는 불평등 또는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불평등’은 3번, ‘불균형’은 2번, ‘공정’은 5번 언급했다.
“불평등 해소 없이 성장 없다”는 키워드
하지만 취임연설이 전부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은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 정책순위 7번에서 ‘노동이 존중받고 모든 사람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노란봉투법), 포괄임금제 금지, 동일노동 동일임금 기준지표 마련, 산업·업종·지역단위 단체교섭 및 협약 활성화, 자영업자까지 산재보험 적용, 원·하청 통합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고용평등 임금공시제 도입, 주 4.5일 근무제 도입, 2030년까지 노동시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 감축 등 많은 노동정책을 담았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가 펴낸 정책공약집에서는 ‘노동존중 및 권리보장’ 카테고리에서 공공부문부터 산업·업종 단위의 단체협약 모델을 구축하고, 기존 노조가 체결한 단협효력은 자동 또는 행정명령으로 확장시키는 내용의 노동공약도 담았다.
그는 선거유세나 SNS를 통해서도 노동에 관한 언급을 자주 해왔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노동자가 작업 중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지난 2일 자신의 SNS에서 “6년 전 김용균 군이 세상을 떠난 그 현장에서, 같은 비극이 또 일어났다”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께 깊은 위로를 전한다”고 밝혔다. 이어 “‘사람보다 이윤’이 앞서는 사회에서 ‘안전’은 가장 먼저 무너진다”며 “기업의 책임 회피와 정부의 무관심 속에, 노동자의 생명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0일 경기도 의정부 유세에서 “1년에 1천명에 가까운 사람이 먹고살자고 일터에 갔다가 되돌아오지 못한다”며 “살자고 하는 일이 죽자고 하는 일이 된 이 암울한 현실을 바꿔야 한다”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폐지를 주장한 김문수 후보를 직격하기도 했다.
취임선서 뒤 가장 먼저 만난 국회 청소노동자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취임선서 뒤 인상적인 장면을 선보이기도 했다. 국회 청소노동자와 방호직원을 찾아 격려했다. 이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2023년 단식을 할 때 도움을 줬던 청소노동자와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계엄군을 막아 낸 방호직원에게 감사 인사를 전달한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청소노동자들과 차례로 인사하며 악수하고, 사진을 찍을 때는 무릎을 낮추는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실은 “내란사태 당시 계엄군의 국회 침탈을 최전선에서 막아 냈던 분들은 방호직원이었으며, 혼란스럽던 민의의 전당을 깨끗이 정리해 주신 분들은 국회 청소노동자였다”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계신 국 노동자의 헌신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선대위 노동본부장을 맡았던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 대통령은 성장과 회복을 말하면서도 불평등 문제를 분명히 지적했다”며 “이재명이 말하는 성장은 불평등 해소 없이 성장할 수 없다는 점을 명징하게 말했다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취임선서 뒤 처음 만난 국민이 청소노동자란 점은 한 번의 이벤트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며 “자신이 소년공 출신임을 잊지 않겠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이 대통령이 우클릭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공약을 국정과제로 제대로 담아내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유니온센터 이사장은 “이 대통령 노동공약에는 핵심과제가 거의 다 들어가 있다”며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보통 100대 국정과제를 만드는데 이 노동공약이 국정과제에서 누락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계 시각도 마찬가지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취임연설에서 다 담을 수는 없겠지만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지 않느냐”며 “앞으로 고용노동부 장관 등 노동인선을 보면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호일 민주노총 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노동에 신뢰를 주려면 노조법 2·3조 개정안 등을 최대한 빨리 통과시키고 노조회계 공시 등 반노동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며 “거리에서 고공에서 농성하는 노동자들이 빨리 내려와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윤정 기자 yjyon@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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