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운영비 원조 금지’ 헌법불합치에 재심, 대법원 “소급 안 돼”
‘노조 운영비 원조 금지’ 조항이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개정됐더라도 소급해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해당 조항은 행정관청 처분인 시정명령에 대한 조항으로, ‘비형벌조항’에 해당해 변경된 법률의 효력이 과거 사건에 소급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단협 ‘시설·편의 제공’ 시정명령, 소송 발단
금속노조 패소 확정 이후 헌재 헌법불합치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금속노조가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을 상대로 낸 단체협약 시정명령취소 소송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소송 발단은 금속노조가 2010년 유성기업 등 5개 회사와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비롯됐다. 단체협약에는 회사가 노조에 조합사무실과 집기·비품을 제공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노동청은 해당 조항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81조4호 위반이라며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 단체협약 시정명령 의결을 요청했다.
옛 노조법 81조4호는 ‘근로자가 노조를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와 노동조합의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원하거나 노동조합의 운영비를 원조하는 행위’를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했다. 충남지노위는 단협의 ‘시설·편의 제공 조항’이 노조법을 위반한다며 금속노조에 시정을 명령했다.
금속노조는 이에 불복해 2012년 1월 소송을 냈다. 1심은 시정명령 중 시설·편의 제공 등 일부 조항이 위법하다며 시정명령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반면 2심은 시설·편의 제공 조항이 적법하다고 보고 1심의 피고 패소 부분을 취소했고, 대법원도 2016년 3월 금속노조의 상고를 기각했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 이후 헌재는 관련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금속노조는 1심 도중 노조법 81조4호 등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법원에 했으나 각하되자 2012년 3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2018년 5월 81조4호 중 ‘노조의 운영비를 원조하는 행위’ 부분에 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후 2020년 6월 운영비 원조 금지 조항이 개정됐다. 개정된 노조법 부칙에는 개정 법률조항의 소급 적용에 관한 별도의 경과규정은 두지 않았다.
운영비 원조 금지 조항 ‘형벌’ 관련성 쟁점
대법원 “노동청 처분인 시정명령 규정”
그러자 금속노조는 헌재 결정 직후 재심을 청구했다. 금속노조는 운영비 원조 금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왔고, 관련된 소송이 확정됐기 때문에 재심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법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가 청구한 헌법소원이 인용된 경우 해당 헌법소원과 관련된 소송사건이 이미 확정된 때에는 당사자가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헌법소원에서 인용된 조항이 ‘형벌’과 관련될 경우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재심에서는 ‘운영비 원조 금지 조항’이 ‘형벌’과 관련된 조항인지가 쟁점이 됐다. 대법원은 비형벌조항에 해당하므로 과거로 소급해 개정 법률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운영비 원조 금지 조항은 노조법상 금지되는 ‘부당노동행위’를 규정한 조항으로서 범죄의 성립과 처벌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해석했다. 노동청의 처분인 시정명령을 규정한 조항이란 것이다.
대법원은 “비형벌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이 선고됐으나 위헌성이 제거된 개선 입법이 이뤄지지 않은 채 개정 시한이 지남으로써 법률조항의 효력이 상실됐다면 효과는 장래를 향해서만 미친다”는 2012년 대법원 판결 등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운영비 원조 금지 조항의 위반을 이유로 피고가 명한 시정명령 적법성을 판단하는 이 사건에서 이를 형벌에 관한 조항으로 나아가 판단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홍준표 기자 forthelabo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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