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곽 드러낸 ‘국회 사회적 대화’ 구상
불투명했던 국회 사회적 대화가 윤곽을 드러냈다, 정부 주도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정책 추진 도구로 활용된 한계를 극복하고 대안적인 사회적 대화를 구축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교수(경영학)는 30일 오전 서울 국회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국회는 사회적 대화를 어떻게 주도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공동세미나에서 “국회법 개정을 통한 국회 사회적 대화의 제도화, 노동·고용 같은 불평등 해소와 직결된 시급한 의제 선정, 합의 수준에 따른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국회입법조사처가 의뢰한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양대 노총과 재계에 국회 사회적 대화를 제안한 뒤 처음으로 형식과 의제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이 제시된 셈이다.

임금체불 해소 방안·쿠팡 과로사·플랫폼 규율 제안
“국회법 개정해 국회의장에 ‘사회적 대화 책임’ 부과”


정 교수는 고용·노동 관련 시급하고 입법이 필요한 사안을 의제로 삼아 국회 사회적 대화를 시작할 것을 제안했다. 경제적 불평등 해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국회의 이해당사자 갈등 조정 역할이 절실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그는 “입법부인 국회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민생에 대해 경사노위보다 민감한 국민 대의기관으로서 조정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며 “국민적 관심사이면서 해결이 시급한 임금체불이나 쿠팡 새벽배송에 따른 노동자 죽음, 외국인 가사노동자 문제 등에 개입해 해결 방안을 논의하고 필요하면 상임위원회별 청문회로 객관적 사실을 파악한 뒤 중재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특수고용직이나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보호 필요성에 이미 노사의 공감 수준이 높은 만큼 이를 입법화하는 것도 용이하다는 얘기다.

이런 사회적 대화가 원활하게 운영되도록 제도화도 강조했다. 국회법을 개정해 국회의장의 임무에 사회적 대화 책임을 지우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관련 조직과 예산도 배정할 수 있다. 우 의장의 임기 동안만 진행하는 일회성 국회 사회적 대화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도화로 불식시키자는 제안인 셈이다.

합의 얽매일 필요 없지만 “입법 결단”은 필요

구성과 회의는 유동적이다. 국회 각 정당의 참여와 노·사·정·공익위원 배정 여부를 모두 열어 놓되 의석수 기준이 아닌 모든 정당에 개방하고, 의제에 따라 양대 노총과 전국단위 사용자단체 뿐 아니라 산별노조나 의제별 사용자조직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고 강조했다.

합의에도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합의를 이루는 것이 좋지만 불가능하다면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며 “최종적 합의가 없더라도 정치적 결단을 내려 내용상 동의를 이룬 것을 입법하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다”고 설명했다.

국회 사회적 대화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경사노위의 한계에서 출발한다. 윤석열 정부 들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일 뿐 아니라 그 이전에도 정부의 정책을 추진하는 도구적으로 활용됐다는 점이 문제다. 정 교수는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수단적으로 접근해 노조의 권한을 약화시키거나 비정규직 활용을 확대하는 등을 위한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사회적 대화를 수단화한다”며 “사회적 대화는 양보와 타협을 중요한 원칙으로 하고 의제에 따라 노사의 양보 또는 정부 지원이 필요하나 노·사·정이 고르게 양보해 사회적 총편익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대화 25년, 노사정 비율 ‘정부 우위’ 확연

실제 역사적으로 사회적 대화 기구의 구성을 보면 정부 주도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이 1998~2021년 사회적 대화 기구 위원구성 현황을 분석한 결과 노사 위원은 각각 16%·15.4%인데 반해 정부위원은 22.5%, 공익위원은 34.5%로 나타났다. 공익위원이 국책연구기관이나 대학에서 정부정책연구를 수주한 전문가가 주류라 정부 주도라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정부 주도의 경사노위는 수차례 중단과 복원을 반복했다. 옛 노사정위원회 시절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한국노총은 1998년 이후 현재까지 11차례 탈퇴·불참과 복귀를 반복했다. 재계도 한 차례 탈퇴와 복귀를 했다. 반복적인 탈퇴·복귀는 정부 주도의 경사노위가 노사 또는 노정관계의 도구로 활용되는 현실을 시사한다. 정 부연구위원은 “행정부가 답을 정해 놓고 합의를 압박할수록 노동계는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불참을 반복한다”며 “일종의 전술로 이탈 후 특정 조건이 해결되면 복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경사노위가 유지된 배경은 역설적이게도 경사노위 이외의 대화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 부연구위원은 ‘게으른 독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노총과 사용자단체는 항의와 이탈 협박, 일시적 이탈 후 복귀를 반복하고 민주노총도 복귀를 시도해 왔는데 이는 회의체 참여시 얻는 이익이 조직은 물론 참여자 개인에도 적지 않은데 반해 이탈시 치러야 할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라며 “이처럼 게으른 독점 상태가 지속되면 회의체가 정체와 퇴보를 거듭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회가 사회적 대화의 건전한 경쟁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한편 이날 우원식 국회의장은 양대 노총과 재계에 정례 간담회를 요청하고, 실무협의회 가동도 제안했다. 의장실 관계자와 양대 노총, 재계를 포함한 실무협의회가 조만간 닻을 올릴 전망이다.

이재 기자 jael@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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