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트럼프] 관세장벽에 자동차·반도체 타격, 대미 무역흑자 444억달러 ‘조정’ 불가피

트럼프가 돌아왔다. 더 독하게.

60번째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실상 당선했다. 개표는 진행 중이지만 AP통신에 따르면 7일 오후 4시 기준 트럼프 전 대통령은 7천264만1천564표(전국 득표율 50.9%)를 얻고 선거인단 295명을 확보해 당선을 확정지었다.

보호무역주의로 무장한 트럼프 행정부 컴백으로 우리나라 경제에 적잖은 악영향이 예상된다. 당장 지난해 역대 최대인 444억달러에 달하는 대미 무역흑자 조정이 불가피하다. 대미 무역은 잔치를 벌였지만 대중 무역수지가 30년 만에 처음 적자 전환해 마이너스(-) 78억2천900만달러를 기록했다. 전체 무역수지는 100억달러 적자다. 한중 관계가 삐걱거리는 가운데 대미 무역수지도 주춤하면 전체 적자가 지속될 우려가 크다. 이날 신승철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은 9월 국제수지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통상과 수출 여건 변화가 있을 것이고 공약을 고려하면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편관세로 자동차 수출액 190억달러 직접 영향

대표적인 게 관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미국에 수입되는 모든 수입품에 대한 10~20% 보편관세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무역전쟁 중인 중국에는 60% 이상의 초고율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흑자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동차(190억달러)와 반도체(45억달러), 자동차부품(41억달러) 등에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된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법)에 눈길이 쏠린다. IRA법은 전기차 구매 보조금과 전지에 대한 세액공제 등을 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줄곧 IRA법을 신종 녹색 사기라고 비난하며 폐지를 강조해 왔다. 다만 의회가 해당 법을 지지하는 데다가, 지지층인 기업 일부가 IRA법의 수혜를 입고 있어 실제 폐지보다 전기차 보조금 등 축소로 귀결할 것이란 전망이 앞선다.

우리나라 기업은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미국 앨라배마와 조지아에 현지 공장 설비를 뒀다. 이 가운데 조지아공장은 전기차 생산에 주력할 요량이었다. 대미 수출 전략과 현지 생산 전략 모두 손질해야 한다.

현대차 조지아공장, 하이브리드 등 유연성 확보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조지아공장은 당초 전기차 주력 공장에서 하이브리드(PHEV) 등 다른 차종도 생산할 수 있는 옵션을 갖췄다. 이미 올 초부터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이 확산하면서 전기차 비중을 낮춰 놓은 덕택이다.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장은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수요 둔화 현상에 따라 이미 차종 다변화 같은 유연성을 갖췄을 것”이라며 “IRA법 관련 영향은 생각보다 극적인 수준은 아닐 수 있다”고 전망했다.

IRA법 폐지 또는 개정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 조정도 마찬가지다. 관세 인상이 전망되는 가운데 IRA법에 따른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차량 자체의 값을 인하해야 하는데, 이를 감당할 기업은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생산을 중단하거나 인상된 관세만큼 소비자가격에 전가하는 방식으로 기업들이 대처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이미 캐즘으로 판매가 부진한 게 상수”라며 “전기차 보조금 삭감 여파에 따른 수요 둔화의 영향은 캐즘과 비교하면 미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선 현대차그룹의 조지아공장 하이브리드 생산 역시 캐즘을 의식한 전략 수정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다만 이 기간 동남아시아 같은 신흥국 시장에서 대미 수출이 막힌 중국산 자동차 브랜드와 경합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저가형 전기차 시장을 잡기 위한 경쟁이 예상된다. 오 실장은 “미국도 관내 관세장벽을 세워 중국의 저가형 전기차 유입을 막고 이 사이 테슬라 같은 기업이 3만달러 이하의 전기차 라인업을 구축하는 ‘게임 체인저’ 모델을 구상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이런 과정에서 미국 내 생산이 지속되고 대미 수출이 차단되면 국내 생산량에 제동이 걸릴 우려는 있다. 이렇게 되면 노사관계에도 악영향이 미칠 전망이다.

반도체 대미 투자 안 한 기업에 페널티 부과할 듯

대미 무역의 또 다른 축인 반도체는 불확실성이 더 크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가 미국에 수출하는 메모리 반도체는 2억4천달러, 시스템 반도체는 8억7천달러다. 대한상의는 이날 트럼프 당선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미국 내 반도체산업에 투자를 안 한 기업에 페널티를 부과하는 정책을 펼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존 반도체과학법(CHIPS법)이 해외기업 투자에 보조금을 주던 유형에서 전환하는 셈이다. 중국의 기술개발 견제가 첫 번째 목적인 만큼 우리나라가 반사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도 있지만 불확실하다.

결국 보편관세와 대중국 무역전쟁을 재개할 것으로 보이는 트럼프 행정부 2기를 맞아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대미 외교 역량이다. 보편관세 역시 기계적 적용이 아니라 협상카드로 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만큼 외교전략 구축이 급선무다.

판로 다변화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문호 소장은 “수출을 지나치게 한 국가에 의존하는 것도 줄일 필요가 있다”며 “폭스바겐 같은 브랜드는 중국 의존도가 커 판매에 어려움이 생기자 위기에 빠졌는데 우리나라도 이 참에 균형 잡힌 수출경로 조정을 요구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재 기자 jael@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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