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첫 최저임금] 2.9% 오른 1만320원 … 17년 만에 노사공 합의로 결정
내년 최저임금이 노사공 합의로 올해보다 2.9% 오른 1만320원(월 215만6천880원)으로 최종 결정됐다. 노사공 합의로 최저임금이 결정된 것은 2008년 이후 17년 만이다.
최저임금위원회(위원장 이인재)는 10일 오후 3시 정부세종청사에서 12차 전원회의를 열었다. 이날 오후 8시30분께 공익위원이 제시한 심의촉진구간(1만210원~1만440원) 안에서 노동계와 재계는 9차(1만440원 vs 1만220원)·10차(1만430원 vs 1만230원) 수정안을 냈다. 다만 이 수정안 제시에 민주노총 노동자위원은 참여하지 않았다. 민주노총 노동자위원 4명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공익위원의 심의촉진구간에 반발해 퇴장했다.
최저임금위는 이날 오후 11시15분께 1만320원으로 내년 최저임금을 최종 의결했다. 노동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합의했다. 1988년 최저임금제 시행 이후 노사공 합의로 최저임금이 결정된 적은 일곱차례뿐이다. 연도는 1989년, 1991년, 1993년, 1995년, 1999년, 2007년, 2008년이다.
한국노총은 “이재명 정부의 출범으로 저임금 노동자들은 윤석열정부보다는 나을 거라는 기대를 품었지만, 오늘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지는 못한 것 같다”며 “심의촉진구간이 사용자쪽에 편파적으로 유리하게 나온 상황에서 한국노총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여기까지였다”고 밝혔다. 이어 “부족한 부분은 이재명 정부의 숙제로 남았다”며 “이재명 정부는 저임금 노동자 생계비 부족분을 보완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8차 수정안 이후 심의촉진구간 제시
최종 결정까지 노사의 줄다리기는 계속됐다. 노사는 각각 8차 수정안으로 1만900원(8.7%), 1만180원(1.5%)을 제시했다. 노사 요구안 격차는 최초(1만1천500원 vs 1만30원) 1천470원에서 720원까지, 초기에 비해 절반 이하로 좁혀졌다. 하지만 노사 양쪽 간극이 큰 탓에 공익위원이 지난 8일 10차 회의에서 ‘중재안’인 심의촉진구간을 제시하기로 했다.
심의촉진구간은 1만210원에서 1만440원 사이로 내놓았다. 인상률 1.8~4.1%이다. 공익위원들은 하한선의 근거로 2025년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1.8%)를 제시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한국은행(1.9%)과 KDI 한국개발연구원(1.7%) 평균치를 낸 것이다. 상한선은 2025년 국민경제 생산성 상승률 전망치(2.2%)를 근거로 들었다. 이는 경제성장률(0.8%)과 소비자물가상승률(1.8%)을 더하고 취업자 증가율(0.4%)을 뺀 수치다. 여기에 2022~2024년 누적 소비자물가상승률(11.4%)과 최저임금 인상률의 차이(1.9%)를 더한 값이라고 설명했다.
심의촉진구간 제시 이후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상한선이 사실상 하한선” “노동계로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결국 10차 회의는 자정을 넘기면서 차수 변경으로 11차 회의로 이어졌지만 노동계 반발로 회의가 종료됐다. 양대 노총은 “노동자 실질임금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수준”이라며 공익위원을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10일 오전 12차 전원회의를 앞두고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이재명 정부의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을 공동 개최하기도 했다.
노동계는 심의촉진구간 철회를 요구했으나 공익위원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민주노총 노동자위원 4명은 이날 오후 8시30분께 수정안을 내는 데 참여하지 않고 회의에서 퇴장했다. 이정희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심의촉진구간 제출을 통해 (공익위원) 편향성이 극명하게 드러났다”며 “공정하고 객관적인 최저임금 심의가 더 이상 불가능하고, 심의 자체가 무의미한 상황에 도달했다고 판단해 퇴장했다”고 설명했다.
새 정부 노동정책 바로미터 … 향후 노정관계는?
이번 최저임금 심의는 이재명 정부 첫해 최저임금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노동계는 새 정부 노동정책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평가해 왔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첫해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게 됐다. 2000년 이후 역대 정부를 보면 첫해 최저임금은 문재인 정부가 16.4%로 가장 높았고, 노무현(10.3%), 박근혜(7.2%), 이명박(6.1%), 윤석열(5%) 순이다. 김대중 정부 당시 첫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역대 최저인 2.7%이었지만, IMF 외환위기라는 경제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이번 최저임금이 노동계가 기대한 수준에 한참 못미치는 수준으로 결정되면서 향후 노정관계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한국노총은 이번 대선 과정에 정책 협약의 당사자이기도 하고 직접적 선거에 깊이 관여한 조직”이라며 “(정책협약 주요 과제) 이행을 위해 노력을 할 것이고, 그렇지(이행을) 못할 경우 정치적 압박 등 수단을 강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퇴장 이후 낸 성명에서 “이재명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공익위원들이 노동자의 현실을 무시한 안을 제출한 것은, 정부 스스로 노동자의 생존권을 전적으로 책임지려 하지 않았음을 뜻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달 16일과 19일, 민주노총은 총파업 총력투쟁을 통해 무너진 최저임금 제도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 정부와 자본의 책임 회피를 단호히 막아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경총은 합의 직후 입장문에서 “그동안 영세‧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경영난을 감안해 최저임금 동결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지만 내수침체 장기화로 민생경제 전반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고심 끝에 이번 최저임금 결정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어고은 기자 ago@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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