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인력업체 간병인, 대법원 “근기법상 근로자”
직업소개업체 소속으로 특수고용직인 간병인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다만 대법원은 간병인이 근무한 요양병원은 직접적으로 업무를 지휘·감독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사용자 지위는 부정했다. 병원이 직업소개업체를 통해 간병인을 사용하는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직원 아닌 ‘회원’, 층별로 3교대 공동간병

19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서울 강북구의 B요양병원에서 퇴사한 간병인 A씨가 병원과 간병인 직업소개업체 H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최근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건은 A씨가 지인 소개로 H사에서 면접을 한 2019년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H사 이사에게 면접을 본 뒤 2019년 8월부터 B요양병원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병원과 H사는 2017년 10월 간병인 공급계약을 체결해 H사가 간병인을 채용해 왔다. 그런데 A씨는 근로계약서를 체결하지 않았다. H사는 ‘회원가입신청서’라는 서류를 내밀었다. 신청서에는 ‘직업소개소 회원이지 사업장 직원이 아니고 4대 보험 가입 및 퇴직금 대상이 아니다’고 적혀 있었다. 나아가 회비를 공제한 급여를 일당으로 계산해 지급한다고 정했다.

A씨는 병원 6층과 8층에 배치돼 해당층 입원환자들의 식사와 목욕, 기저귀 착용, 휠체어 이용 등 간병 업무를 도맡았다. H사가 간병 대상자와 간병 시간, 방법을 정한대로 움직였다. 층별로 배치된 간병인 7명이 3교대(주간·오후·야간)로 하루 8시간을 일했다. 층별 입원환자 약 20명을 간병인 3명이 공동간병했다. 근무시에는 H사가 적힌 앞치마를 입고, H사에서 간병 물품을 지급받았다.

업무 강도는 높았다. H사 관리인이 간병인들의 3교대 근무시간표를 작성해 간병인들의 출퇴근시간을 기록했다. 한 간병인이 빠지게 되면 해당층의 다른 간병인들이 그 자리를 메워야 하는 구조였다. 간병비 역시 H사가 관리인 명의 계좌로 받은 뒤 이를 다시 회비를 공제한 후 간병인들에게 지급했다.

노동부 근로자성 부정, 법원 “실질은 노무 제공”

그런데 A씨는 근무한 지 1년2개월 만에 갑작스럽게 해고됐다. 2020년 10월 초 A씨와 환자 사이에 욕설과 신체 접촉이 발생하자 H사 이사는 A씨게에 전화를 걸어 “쉬고 있고 병원에 나오지 말라”는 취지로 말했다. 사실상 해고로 받아들인 A씨는 이후 병원에 출근하지 못했다. 해고 직후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진정했지만, 노동청은 A씨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며 종결했다.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한 A씨는 민사소송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A씨는 2021년 6월 병원과 H사를 상대로 주휴수당과 연차유급휴가수당·해고예고수당·퇴직금 등 미지급 임금 1천250만원을 청구했다. 하지만 H사는 “회원가입계약에 따라 간병인 일을 할 수 있도록 알선해 A씨가 독립적 지위에서 업무를 수행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1심은 H사에 대한 A씨의 근로자성은 인정했다. 재판부는 “H사가 간병인과 회원가입약정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환자들로부터의 간병비를 H사의 명의로 직접 지급받거나 관리하지 않았더라도, 근로제공관계의 실질은 원고가 H사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노무를 제공한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H사 이사가 채용면접과 인원배치, 해고까지 모든 인사노무 사항을 관장하고 간병인을 관리했다고 봤다. 또 관리인을 지정해 간병인들의 업무 수행을 간접적으로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병원에 대한 간병인의 종속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2심 역시 판단은 같았다. H사는 단독으로 항소하면서 “H사 이사는 A씨를 해고한 사실도 없고 해고할 권한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A씨가 일방적으로 간병인 업무를 종료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H사 이사가 A씨의 업무개시 및 종결을 결정하거나 지시했다”며 전화 통보에 따른 해고라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2심을 유지했다.

‘오락가락’ 근로자성 판단 “사각지대 해소해야”

A씨는 대법원에서 근로자성을 일부 인정받았지만 ‘간병인의 근로자성’에 대한 노동위원회와 법원 판단은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직업소개업체(협회)와 병원의 사용자 지위를 두고도 판단은 엇갈린다. 고용노동부는 2006년 10월 간병사연합회에 대한 간병인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취지의 행정해석을 내놓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2009년 3월 간병인협회 소속 간병인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판단하지 않았다. 간병인과 병원 사이의 근로자성에 관해서도 중앙노동위원회는 2008년 1월 노인전문병원을 사용자로 봤지만, 서울행정법원은 2010년 6월 간병인의 병원에 대해 종속성을 부정했다.

이 때문에 병원과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직업소개업체를 거쳐 근무하는 간병인은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요양시설에서 근무하는 요양보호사들이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점과도 대비된다. 전지현 전국돌봄서비스노조 위원장은 “병원 간병인들은 간병인협회 또는 알선업체를 끼고 일해야 해서 수수료를 떼고 급여를 받는다”며 “그래서 이주노동자 간병인이 많은데, 소속감이 전혀 생기지 않는 구조가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홍준표 기자 forthelabo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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