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되는 근로자가 장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하여 권리가 실효되었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2024다269143 (2024. 11. 20.)
* 사건 : 대법원 제1부 판결 2024다269143 근로자지위확인등
* 원고, 피상고인 : 원고
소송대리인 변호사 김기덕 외 3인
* 피고, 상고인 : ○○○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담당변호사 김상민 외 6인
* 원심판결 : 서울고등법원 2024. 6. 19. 선고 2023나2012706 판결
* 판결선고 : 2024. 11. 20.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상고이유서 제출기간이 지난 다음 제출된 상고이유보충서의 기재는 상고이유를 보충하는 범위에서)를 판단한다.
1. 근로자파견관계 인정 여부에 관한 판단(제2 상고이유)
원고용주가 어느 근로자로 하여금 제3자를 위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경우 그 법률관계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이라 한다)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는 당사자가 붙인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제3자가 그 근로자에 대하여 직․간접적으로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그 근로자가 제3자 소속 근로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되어 직접 공동 작업을 하는 등 제3자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원고용주가 작업에 투입될 근로자의 선발이나 근로자의 수, 교육 및 훈련, 작업․휴게시간, 휴가,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계약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업무의 이행으로 확정되고 그 근로자가 맡은 업무가 제3자 소속 근로자의 업무와 구별되며 그러한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있는지, 원고용주가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의 요소를 바탕으로 그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 등 참조).
원심은 판시와 같은 사실을 인정한 후, 피고의 사내협력업체 소속으로 △△공장에서 엔진제작공정(테스트라인 마감 조립공정) 업무를 담당한 원고가 피고로부터 지휘․명령을 받는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었다고 판단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원심판결 이유를 앞서 본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근로자파견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2. 피고의 임금 지급의무의 존부에 관하여(제3 상고이유)
구 파견법(2006. 12. 21. 법률 제807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에 따른 직접고용간주 효과 발생 후 사용사업주가 파견근로자를 현실적으로 고용하고 있지 않은 동안 파견사업주와 파견근로자 사이의 고용관계가 단절되거나 그 밖의 사유로 사용사업주에 대한 근로제공이 종료되거나 일시적으로 중단된 경우, 파견근로자는 민법 제538조 제1항에 따라 근로제공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사용사업주의 책임 있는 사유로 인한 것임을 증명하여 사용사업주를 상대로 근로제공 중단 기간 동안 근로제공을 계속하였다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 등 상당액을 청구할 수 있다. 이때 근로제공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사용사업주의 책임 있는 사유로 인한 것인지는 근로제공이 이루어지지 않은 구체적인 사유와 경위, 그 사유에 관한 파견근로자와 사용사업주의 태도 등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24. 3. 12. 선고 2019다223303, 223310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원심이 원고와의 고용관계가 단절된 것이 사용사업주인 피고의 책임 있는 사유로 인한 것이라는 전제에서 고용관계가 단절된 이후의 기간에 대하여 피고에게 임금 지급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구 파견법상 직접고용간주 사건에서 임금 지급의무의 존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3. 실효의 원칙 적용에 관한 판단(제1 상고이유)
가. 실권 또는 실효의 법리는 신의성실의 원칙에서 파생한 법원칙으로서, 본래 권리행사의 기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권리자가 장기간에 걸쳐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무자인 상대방이 이미 그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것으로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게 됨으로써 새삼스럽게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되는 결과가 될 때 권리행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대법원 1988. 4. 27. 선고 87누915 판결, 대법원 2021. 12. 30. 선고 2018다241458 판결 등 참조). 실효의 원칙이 적용되기 위하여 필요한 요건으로서의 실효기간(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한 기간)의 길이와 의무자인 상대방이 권리가 행사되지 아니하리라고 신뢰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는지의 여부는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우마다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한 기간의 장단과 함께 권리자 측과 상대방 측 쌍방의 사정 및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정 등을 모두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1992. 1. 21. 선고 91다30118 판결, 대법원 2023. 4. 13. 선고 2021다310484 판결 등 참조).
나.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로, 피고가 들고 있는 사정들과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원고가 피고에게 더이상 권리행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신뢰할 만한 정당한 기대를 가지게 함으로 인해 원고의 권리행사가 신의칙에 반한다거나, 원고가 장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아 권리가 실효되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다.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원심의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긍하기 어렵다.
1) 원고는 직접고용이 간주된 2002. 4. 22.로부터는 약 18년, 파견근로관계가 종료된 2009. 9. 26.부터는 약 11년 4개월 뒤인 2021. 1. 24.에 이르러서야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그 사이에 원고가 피고의 다른 협력업체를 통하여 파견근로관계를 유지하였다거나 이 사건 소제기 이전에 피고를 상대로 직접고용이행을 요구하는 등의 권리를 행사하였다고 볼만한 다른 사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원고는 파견근로를 종료한 2009. 9. 26. 이후부터 피고의 자동차 제조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직종에서 근무하였을 뿐이다.
2) 피고의 □□공장 내 협력업체 직원들에 대한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하는 대법원판결(2008두4367)이 2010. 7. 22. 최초로 선고되었고, 피고의 △△공장 소속 노동조합에서는 위와 같은 대법원판결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마침내 불법파견 정규직화의 길이 열렸습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게시하면서 노동조합 집단 가입을 독려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위 대법원판결 이후 피고의 협력업체 소속 직원 수천 명이 2010년부터 2013년경 사이에 피고를 상대로 대규모 소송을 제기하였고, 이러한 내용이 언론을 통하여 보도되기까지 하였다.
3) 위 2010년부터 2013년경 사이에 제기된 대규모 소송에 관하여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한 제1심판결이 2014. 9. 18. 선고되었고, 이에 대한 항소심판결이 2017. 2. 10. 이루어졌다. 또한 원고가 소속되었던 피고의 △△공장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에 대하여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한 대법원판결(2010다106436)이 2015. 2. 26. 선고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원고는 그로부터 약 6년이 지나서야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4) 파견법상 직접고용의무 규정은 사용사업주가 파견법을 위반하여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행위에 대하여 근로자파견의 상용화․장기화를 방지하고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을 도모할 목적에서 행정적 감독이나 처벌과는 별도로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 사이의 사법관계에서도 사용사업주에게 직접고용의무라는 법정책임을 부과한 것이므로 직접고용의무 규정에 따른 고용 의사표시 청구권에는 10년의 민사시효가 적용된다(대법원 2024. 7. 25. 선고 2024다211908, 211915, 211922 판결 참조). 원고는 위와 같이 피고와의 근로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이후부터는 약 11년 4개월, 피고의 □□공장 내 협력업체 직원들에 대한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한 대법원판결이 선고된 날부터도 약 10년 6개월이 경과한 상태에서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는데, 이러한 경우에까지 실효의 원칙을 부정한다면,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이 적용되는 직접고용 의사표시 청구권과의 형평에도 어긋난다.
라. 그럼에도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원고의 권리가 실효되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보아 피고의 이 부분 주장을 배척하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실효의 원칙 적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
4. 결론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노경필(재판장), 노태악, 서경환(주심), 신숙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