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 성폭력 경험률 지난 3년간 눈에 띄는 감소 없어
2022년 9월 신당역 살인 사건 이후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개정되고, 스토킹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방지법)이 마련됐지만 일터에서 여성들은 젠더폭력으로부터 여전히 안전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내 젠더폭력을 경험했을 때 신고나 구제절차를 통해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기보다 스스로 일터를 떠나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여성들이 일터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장갑질119는 1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일터에서 여성들이 사라진다’ 토론회에서 직장내 젠더폭력 경험과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2022~2024)를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젠더폭력 관련 법과 제도는 마련됐는데 직장인들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토론회는 윤건영·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혜경 진보당 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여성·비상용직일수록 피해 경험 많아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5월31일~6월10일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장내 성희롱을 경험 여부에 대해 응답자 22.6%가 “있다”고 답했다. 직장갑질119가 2022년 10월(29%), 2023년 8월(26%)에 했던 조사 결과와 비교했을 때 소폭 감소했다.
직장내 성추행·성폭행이나 스토킹은 변화가 없거나 소폭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내 성추행·성폭행 경험률은 2022년 17.3%에서 지난해 15.1%로 줄었지만 올해도 15.1%로 지난해와 같았다. 직장내 스토킹 경험률은 2022년 10.9%에서 2023년 8%로 감소했지만 올해 10.6%로 다시 늘어났다. 성희롱과 성추행·성폭행은 ‘여성’ ‘비상용직’일수록 피해 경험이 더 많았고, 스토킹은 성별과 고용형태에 따른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직장내 성희롱 피해를 경험한 응답자 절반 이상(55.8%)은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고 답했다. 회사나 노동조합, 관련 기관에 신고를 한 경우는 7.6%에 그쳤다. 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로는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라는 답변이 53.6%로 가장 많았다. 피해를 경험한 응답자 13.7%는 회사를 그만두는 길을 택했다. 성별과 고용형태를 따져 보면 남성 상용직은 6.3%만 회사를 그만뒀다고 답한 반면, 여성 비상용직은 24.2%가 그만뒀다고 답해 약 4배 차이가 났다.
2021년 10월 스토킹처벌법 시행으로 직장에서 스토킹이 줄어들었는지 물어 보니 10명 중 4명(41.8%) 정도만 줄어들었다고 답했다. 스토킹방지법의 스토킹 예방 및 피해자 보호 효과성에 대해서도 “효과 있다”고 답한 경우는 39.7%였다.
실태조사를 분석한 김세정 공인노무사(노무법인 돌꽃)는 “여성들은 직장내 젠더폭력을 더 많이, 더 심각하게 경험하지만 회사도 정부도 보호해 줄 수 없다는 생각에 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일터를 떠나고 있다”며 “여성들을 일터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은 (가해) 행위자 개인뿐만 아니라 회사 시스템, 법과 제도, 정부라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고용불안 없이 상담·치료받도록 휴가 보장해야”
토론회에 참석한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폭력 피해 노동자가 해고 불안과 위험 없이 직장을 잠시 쉴 수 있도록 보장하는 ‘안전휴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노동자에게 상담서비스부터 병원 치료 등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고 해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으면 제도적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별도 지원대책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허 입법조사관은 “캐나다의 경우 ‘공정한 직장, 더 나은 일자리법’으로 본인과 그 자녀가 폭력 피해를 입었거나, 그 위협에 처했을 때 실직에 대한 우려 없이 최초 5일 유급휴가를 비롯해 최장 15주까지 무급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며 “이때 폭력은 데이트 폭력, 스토킹, 인신매매 피해 등으로 폭넓게 규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직장내 성희롱 예방을 위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토론회에 참석한 조정숙 고용노동부 여성고용정책과장은 “직장내 성희롱에 대한 과태료 부과 대상에 (사업주뿐만 아니라) 법인 대표자도 포함하는 내용을 지난해 정부 입법으로 추진했으나 21대 국회에서 폐기됐다”며 “피해자 권리구제 강화를 위해 법 개정을 신속히 재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어고은 기자 ago@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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