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불 사업주, 적당히 늦게 임금 지급하는 게 이득?
올해 임금체불 총액이 사상 최고치인 2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노동 행정·사법이 임금체불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국노총은 1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임금체불 근절대책·제도개선 토론회’를 열었다. 강득구·김성회·김주영·김태선·박정·박해철·박홍배·서영교·송옥주·이수진·이용우·이학영·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김위상·김형동·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실,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실,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실과 공동주최했다.
복잡한 임금체계도 임금체불 원인
이동철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천상담소 실장은 체불 사례를 △임금 지급 보호규정 △임금 수준 보호규정 △각종 법정수당 등 산정을 위한 기술규정 위반 등 세 가지로 구분했다. 발제자로 참여한 권오성 연세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제시한 기준에 따른 것이다.
먼저 사용자가 임금의 전액 또는 일부를 임금 지급일에 지급하지 않거나 임금 지급일을 지나 지급하는 사례다. 이 실장은 “상담 통계상 상시근로자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두드러진다”며 “일반적으로 사용자의 지급여력 문제와 직결된다고 생각하지만 ‘영업하다 보면 임금체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안일한 인식을 가진 사용주들도 많다”고 말했다. 특히 임금체불에 취약한 건설업의 경우 원청의 대금 지급 기간과 근로기준법상 임금 지급 기한이 일치하지 않으면서 피해노동자가 많이 발생한다.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 지급이 임금 수준 보호 규정을 위반한 대표적 사례다. 이 실장은 “사업주들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 사회경제적 환경을 탓한다”며 “하지만 상담사례를 보면 청소년·여성·고령노동자 같은 취약계층에 최저임금 지급 의무를 회피하려는 의도가 명확하게 보일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또 임금체계가 복잡해 퇴직금에 포함돼야 할 상여금 등이 빠지는 임금체불 사례도 있다. 인사 노무역량이 부족한 중소사업장은 세무사에게 임금 산정 등을 위임하는데, 세무사는 노동관계법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휴일근로 가산 산정이나 퇴직금 등의 지급 기준이 되는 평균임금 산정에서 산입 수당을 누락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것이다.
처벌 가볍게 만드는 반의사불벌죄
현재 노동 행정·사법 제도에서 사업주는 적당히 늦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오히려 경제적으로 유리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임금체불의 원인을 구분해 다층적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박성우 공인노무사(노무법인 노동과인권 대표)는 “임금체불 가장 큰 원인은 사업체 재정 악화가 일반적”이라며 “하지만 경기는 세계적으로 비슷하다. 한국의 임금체불 건수와 금액이 유독 높은 원인은 한국의 노동 행정·사법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임금체불죄가 반의사불벌죄라는 점부터 문제가 됐다. 박 노무사는 “임금체불이 발생하면 일차적 법적 구제절차는 고용노동부 신고인데, 근로감독관이 빠른 합의를 위해 피해노동자에게 처벌불원 의사 표시를 종용한다”며 “진정사건은 지도해결-반의사불벌-행정종결로 끝난다”고 지적했다.
임금체불죄 형량이 높지만 실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것도 반의사불벌죄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임금체불죄는 근로기준법상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하지만 2020년 전국 1심 법원의 임금체불죄 형사판결 결과를 보면, 징역형의 실형이 선고된 건수는 4%에 불과했다. 벌금형과 벌금형의 집행유예가 64%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벌금형의 경우 형량을 보면 체불액의 13.1%에 불과했다. 대체로 체불임금액의 10% 수준의 벌금만 내면 끝이다.
박 노무사는 “임금체불죄가 반의사불벌죄다 보니 사용주가 임금체불죄로 재판을 받게 되더라도 1심 판결 전까지만 지급하면 처벌받지 않는다”며 “이런 노동행정·사법 행태에서 사용자가 제때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으면 안 될 유인이 없다. 오히려 적당히 늦게 지급하는 것이 사용자에게 경제적 이익”이라고 비판했다.
임금을 늦게 지급할수록 그만큼 사용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가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박 노무사는 “현재 퇴직자에게만 적용되는 지연이자제도를 재직자까지 적용하고, 지연이자 미지급 처벌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금체불, 일반 재산범죄 아냐”
임금체불에 대한 민사적 해결 방안으로 임금채권 소멸시효 기간 확대가 필요하다. 임금체불죄의 공소시효가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3년에서 5년으로 변경되면서, 임금채권 민사상 소멸시효 3년과 차이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사상 임금 지급의무가 소멸됐는데, 사용자를 형사로 처벌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이에 임금채권 소멸시효를 5년으로 연장하자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권오성 교수는 또 임금의 매월 1회 이상 정기지급 원칙을 지키기 위해 정기상여금을 매월 지급일에 분할 지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임금체계의 단순화 및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지적도 했다. 근로감독관이 발급하는 ‘체불임금등 사업주확인서’로 확인된 임금채권에 법원의 집행력을 부여하는 제도를 신설해 피해노동자가 새롭게 임금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형사적 해결 방안으로 임금체불죄 양형기준을 사기·횡령 등 일반 재산범죄와 달리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권 교수는 “하나의 회사에서 1억원을 횡령하는 행위와 100명의 노동자에게 각 100만원의 임금을 체불하는 해위가 불법이나 책임의 정도가 같다고 볼 수 없다”며 “임금체불죄는 양형에서 피해노동자수, 미지급 기간 등이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석영 기자 getout@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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