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문턱을 넘어 본회의로 향한다.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정부와 논의를 거쳐 수위를 조절한 안이다. 노동계가 요구했던 이른바 ‘노동자 추정제’를 반영하지 않고, 민법상 불법행위에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부진정연대책임’을 그대로 유지했다.
기존 발의된 개정안들에는 없었던 조항이 상임위 논의 과정에서 추가됐다. 노동쟁의의 대상에 ‘사용자의 명백한 단체협약 위반’을 추가했다. 노동부가 가져온 안인 ‘근로조건의 결정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에 단협 위반을 더하며 노동쟁의 대상을 넓혔다. 다만 이마저도 윤석열 정부 거부권(재의요구권)으로 지난해 폐기된 노조법 개정안에 미치지는 못한다.
“근로조건 실질적·구체적 지배·결정하면 사용자”
노동쟁의 개념 ‘명백한 단협 위반’ 따른 분쟁 추가환노위는 28일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를 열고 발의된 노조법 2·3조 개정안들을 원포인트로 다룬 뒤 통합·조정한 대안을 만들어 전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민주당과 진보당 주도로 이뤄졌다.
사용자의 정의(2조2호)는 지난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환노위장 대안 수준을 유지했다.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안이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2조2호 개정안은 여당인 민주당뿐 아니라 노동부도 큰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노동쟁의의 정의(2조5호)는 구체화했다. 지난해 환노위장 대안은 노동쟁의를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에 관한 주장 불일치”로 폭넓게 규정했다. 이번에 환노위를 통과한 노조법 개정안은 노동쟁의를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근로자의 지위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와 “사용자의 명백한 단체협약 위반으로 인해 발생한 분쟁상태”로 정의했다. 당초 노동부가 가져온 안에는 전자만 있었다. ‘근로자의 지위’에 대한 노사 입장차를 이유로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해고자 복직이나 부당노동행위 철회 등을 위한 쟁의행위는 현행처럼 불가능하다.
손배 ‘부진정연대책임’ 유지하는 대신
“경제상태·부양의무·최저생계비 고려” 감면
공포 6개월 뒤 시행, 책임면제 조항 소급적용3조(손배청구 및 배상책임 제한)도 노동부가 제시한 안의 영향으로 환노위 대안에서 일부 바뀌었다.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 그 밖의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조 또는 노동자에 대해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사용자의 불법행위에 대해 노조 또는 근로자의 이익을 방위하기 위해 부득이 사용자에게 손해를 가한 노조 또는 노동자는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조항은 그대로 들어갔다. 지난해 노조법 개정안과 동일하다.
다만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투쟁에 대한 2023년 대법원 판결이 명시한 개별 조합원의 책임 법리가 노조법 개정안에 담기게 됐다.
“법원은 단체교섭, 쟁의행위, 그 밖의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근로자에게 인정하는 경우 손해배상 의무자인 근로자에 대해 책임비율을 정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구체적으로 △노동조합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등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관여의 정도 △손해의 원인과 성격 △그 밖에 손해의 공평한 분담을 위해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항에 따라 책임비율을 달리 정하도록 했다.
부진정연대책임을 유지하는 조항으로, 노동부 의견이다. 지난해 폐기된 노조법 개정안은 “법원은 단체교섭, 쟁의행위, 그 밖의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각 손해의 배상의무자별로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고 정해 부진정연대책임을 일부 제한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보완책을 신설했는데, 제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3조 개정안에는 “배상의무자인 노조와 노동자는 법원에 배상액의 감면을 청구할 수 있다” “이때 법원은 배상의무자의 경제 상태, 부양의무 등 가족관계, 최저생계비 보장 및 존립 유지 등을 고려해 각 배상의무자별로 감면 여부 및 정도를 판단해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사용자는 노조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거나, 운영을 방해할 목적 또는 조합원의 노조활동을 방해하고 손해를 입히려는 목적으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도 넣었다.
“사용자는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 그 밖의 노조 활동으로 인한 노조 또는 노동자의 손해배상 등 책임을 면제할 수 있다”는 내용도 있다.
시행일은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이다. 3조 개정안 중 책임면제 조항은 법 시행 발생 전 손해에 대해서도 적용하기로 했다. “노동부는 이 법 시행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고 국회에 보고한다”는 내용의 부대의견도 담았다. 7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다음달 4일 본회의 통과가 유력하다.
‘노동자 추정제’ 결국 빠져이날 고용노동소위에 앞서 민주당 환노위 의원 등과 노동부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로 간담회를 열고 노조법 2·3조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 자리에서 노동부는 노조법 2조 개정안 시행을 1년 뒤로 유예 등 기존의 주장을 일부 수정·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진통이 있었다. 22대 국회에 발의돼 있는 노조법 2·3조 개정안 내용이 제각각인데다가, 노동부 안까지 더해지며 소위 ‘교통정리’가 되지 않은 채로 고용노동소위가 시작됐다. 이날 오전 고용노동소위는 비공개로 전환된 지 20여분 만에 정회했다. 민주당 의원들끼리도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판단이 있었다는 전언이다.
오후 속개한 고용노동소위도 의견조율을 위해 정회를 거듭했다. “노조를 조직하거나 노조에 가입한 자는 근로자로 추정한다”는 내용을 담은 2조1호 개정안은 이 과정에서 빠지게 됐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의 거부권으로 폐기된 노조법 개정안에는 해당 내용이 없다. 이용우 민주당 의원과 정혜경 진보당 의원 등이 고용노동소위에서 2조1호를 포함해 노조법을 개정하자고 강하게 주장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고용노동소위에 들어가지 않을 방침이었지만, 계획을 바꿔 노조법 2·3조 개정안의 논의가 빠르다며 불만을 표하다 퇴장했다. 비공개 회의에서는 2조 개정안에 특히 문제를 제기했다고 복수의 관계자가 전했다. 우재준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회의장을 나오며 “3조는 좀 논의가 됐는데 2조는 사회적 논의가 성숙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환노위 전체회의에서도 “민주노총 청구입법” “강성귀족노조 주권정부” “악법”이라며 언성을 높이다 표결하지 않고 퇴장했다.
양대 노총 “아쉽지만 진일보”
재계 “노동계 요구만 반영, 산업경쟁력 저하”노동계는 환영하면서도 아쉬운 지점이 병존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은 이날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하자 성명을 내고 “공동사용자 정의를 노동법 체계로 끌어들여 진일보하다”면서도 “지금은 임금인상이나 단협 갱신·체결과 같은 이익분쟁시에만 쟁의행위가 가능하지만, 윤석열 거부안은 체불임금 청산·해고자 복직·단체협약 이행·부당노동행위 구제(권리분쟁) 등으로까지 합법적 쟁의행위 대상을 확대하도록 했다. 이날 환노위 통과 개정안은 권리분쟁을 이유로 하는 쟁의행위는 지금처럼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도 입장을 내고 “이번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정부가 공포하게 되면, 이제 원청이 하청노동자를 통해 이득은 취하면서 책임은 회피하는 부당한 관행은 종식될 것”이라며 “민주노총이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노동자성 추정 조항, 사내하청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 간주, 개인 손해배상 금지 조항이 모두 반영되지는 않아 아쉬움이 크다”고 강조했다.
재계는 반발했다. 한국경총은 입장문에서 “노사관계의 한 축인 경영계의 제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조차 없이 노동계의 요구만 반영해 법안이 통과된 데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현재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 주목받고 있는 우리나라의 조선업을 비롯해 자동차, 철강업종이 다단계 협업체계로 구성돼 있는 상황에서 노조법 개정으로 하청노조의 파업이 빈번하게 발생하면 산업생태계 붕괴와 함께 일자리 감소 등 우리 산업 경쟁력은 심각하게 저하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총은 이어 “개정안과 같이 기업의 투자 결정, 사업장 이전, 구조조정 등 사용자의 고도의 경영상 판단사항까지 단체교섭·쟁의행위 대상이 된다면 우리 기업들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산업환경에 대처하기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한님 기자 ssen@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