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 임금피크 적법? “불이익 정도 커, 무효”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임금을 삭감하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도 위법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임금피크제로 인한 임금삭감 등 불이익이 지나쳐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을 금지하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을 위반했다는 취지다.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에 비해 유효하다는 것이 판례 흐름이라, 이번 판결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34년 근무했는데, 임금지급률 35%까지 하락
20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수원지법 성남지원 민사1부(재판장 박대산 부장판사)는 IM라이프생명보험(옛 DGB생명보험) 퇴직자 A씨 등 3명이 보험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1심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회사는 A씨 등에게 임금피크제 시행 전후의 차액인 1억5천여만원~2억1천여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
A·B씨(61)는 1990년 입사해 34년간 근무한 뒤 지난해 정년퇴직했다. C씨(60)는 2000년 입사한 뒤 올해 5월 정년을 맞았다. 이들이 퇴직할 당시 직급은 모두 차장이었다. 회사는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도록 한 고령자고용법이 적용된 2017년 1월 직전인 2016년 11월30일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당시 정년은 만 58세였다.
노사가 체결한 임금·단체협약의 임금피크제 운영기준에 따르면 ‘만 56세가 도래하는 전 직원’에게 임금피크제가 적용됐다. 적용기간은 만 56세에 도달하는 연도의 1월1일부터 만 60세에 이르는 해당 연도의 월말까지로 정했다.
임금지급률은 만 56세 75%를 시작으로, 해마다 10%포인트씩 줄어 만 60세가 되는 5년 차에는 35%까지 삭감됐다. A씨 등은 만 56세가 된 2020~2021년부터 삭감된 임금이 지급됐다. 이들은 지난해 6월 회사를 상대로 임금피크제가 적용되지 않았다면 퇴직까지 추가로 받을 수 있었던 임금과 퇴직금 등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임금 조정률 과도, 무임금 노동 다름없어”
법원은 이번 사건의 임금피크제를 ‘정년연장형’으로 보면서도 고령자고용법에 반해 무효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년을 연장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라고 해서 무조건 연령차별금지의 예외사유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실질적인 고용유지·촉진을 위한 지원조치가 있었는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이 사건 임금피크제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들을 차별했다”고 판시했다.
특히 재판부는 임금피크제로 인한 노동자들의 불이익 정도가 임금피크제 도입의 타당성을 ‘무의미’하게 만들 정도라고 강조했다. 임금피크제가 시행되지 않았다면 만 55세부터 기존 정년인 만 58세까지 3년간 연간 고정급여의 300%를 지급받을 수 있었는데 비해 임금피크제 시행으로 만 55세부터 만 60세까지 5년간 받은 급여는 연간 고정급여의 275% 수준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근무기간은 2년 늘었지만, 급여 지급률은 오히려 줄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정년연장이 근로자에게 이익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근로자가 연장된 근무기간 동안 추가로 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임금피크제의 임금 조정률이 과도할 뿐만 아니라 임금삭감에 대한 대상조치도 충분하게 도입되지 않았다면 연장된 근무기간을 무임금으로 일하는 것과 다름없고, 이러한 정년연장은 노동력만을 착취하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 단체보험 가입과 학자금·의료비 지원 등 복리후생 제도가 있었더라도 임금피크제로 인한 불이익을 상쇄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민원부서 보내면서 신규채용 미흡 “도입목적 무의미”
임금피크제 시행에 대한 적절한 대상 조치도 미흡했다고 봤다. 회사는 임금피크제 도입 이후 A씨 등을 기존 부서에서 소비자보호부로 변경해 민원처리 업무를 맡겼다. 재판부는 “악성민원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겪는 경우가 많아 기존보다 업무강도가 감경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회사가 임금피크제 시행으로 감액된 재원을 고령자 고용의 안정화와 청년 일자리 창출에 쓰지도 않았다고 판단했다. 실제 회사가 임금피크제 도입 이후 신규 채용한 인원은 2021~2022년 16명에 그친 반면, 2019~2023년 퇴직한 직원은 약 103명에 달했다.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무효로 보는 판결이 극히 드물어 이번 판결을 주목해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은 2022년 5월 한국전자기술연구원 퇴직자의 임금 청구 소송에서 임금피크제 효력에 관한 판단기준을 최초로 제시했지만, 이후 위법성 판단은 주로 ‘정년유지형’에만 집중됐다. 다만 ‘하나증권 임금피크제’ 사건에서 지난해 9월 서울남부지법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무효라고 봤다.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가 위법이라고 판단된 공통된 근거는 ‘임금피크제 대상 노동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에 있다. 하나은행과 이번 사건 모두 정년이 2년 연장되더라도 임금 총액이 줄어들었다면 임금피크제로 인한 불이익이 크다고 봤다. A씨 등을 대리한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대해선 최근 하급심 등에서 불이익이 큰 사례에서도 노동자가 패소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사건은 다르게 판단했다”며 “회사는 (사실상 그만두게 할 목적으로)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을 민원부서로 발령을 내면서 대상조치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이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홍준표 기자 forthelabo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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